사무실을 새로 개업했다는 소식을 전하긴 했지만, 이모가 진짜로 다녀가실 줄은 몰랐다. 이제는 혼자서는 한 걸음도 떼기 힘들어 사촌 동생이 늘 그림자처럼 동행해야 하는 처지라, 나를 보러 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갑자기 일산에 사는 사촌 동생 녀석이 연락해 왔다. 대뜸 판교에 있는 미장원을 예약했다며 이모를 모시고 오겠다는 것이다.
"참 나! 일산에서 판교까지? 얼마나 커트를 잘하길래 거길 가?"
동생 녀석은 이모를 내게 슥 떨궈놓고는, 정말로 제 머리를 하러 쌩하니 가버렸다. 물론 안다. 멀리 사는 이모와 나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던 녀석만의 다정한 핑계였다는 것을.
이제는 나이가 들어 고기가 아닌, 나물 반찬이 정갈하게 많이 나오는 한정식 집이 좋으시다는 이모.
일찍 부모님을 여읜 내게 이모는 그냥 이모가 아니라 '엄마'였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이모는 늘 엄마의 자리에 서 있었다. 어린 시절 설레던 설빔을 준비해 준 것도 이모였고, 시집갈 때 떨리던 상견례 자리에 나와 준 것도 이모였다. 철없던 시절 언니와 대판 싸우고 묵언 시위를 벌일 때, 슬그머니 손을 잡으며 화해를 시킨 것도 이모였다.
이른 나이부터 허리가 아파 한참을 고생하시더니, 이제는 고관절까지 약해져 거동이 불편하시다는 이모를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생각해 보면 이모네 집에 얹혀살면서 나는 참 안하무인이었다. 밥 한 번 안 지어봤고, 청소 한 번 제대로 도운 적이 없었다. 눈치라는 건 눈곱만큼도 보지 않고 공주처럼 살았다.
그러니 멋모르고 시집가서 내 손으로 직접 밥을 해 먹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시집가기 며칠 전, 이모부께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물으셨던 기억이 난다.
"너... 밥은 할 줄 아니?"
"하겠죠, 뭐~~"
참 대책 없던 스무살 후반의 처녀는 그렇게 시집을 갔다.
오늘 내 앞에 앉아 나물 반찬을 맛있게 드시는 이모의 주름진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책 없던 나를 이만큼 키워내느라 닳아버린 이모의 세월이 그 손에 고스란히 얹혀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난 걱정스런 조카다 대책이안서는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다 그렇게 헤어지고 싶다 엄마 대신 내 전동차가 되어주었던 나의 이모, 나의 엄마.
식사가 끝나고, 사촌 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오르는 이모의 뒷모습을 보는데 목구멍이 턱 막혀왔다. 차창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이모의 눈빛에는 여전히 지우지 못한 걱정이 한가득 묻어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는 게 솔직히 너무나 아프고 무거웠다. 스무 살의 나는 대책이 없어도 당당했는데, 나이를 먹은 지금의 나는 아직도 인생의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여전히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이모에게만큼은 다 잘 사는 모습, 떳떳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다 늙고 아픈 이모에게 나는 여전히 마음 편히 내려놓지 못하는 '신경 쓰이는 조카'일 뿐인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고 가슴이 찢어졌다.
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마음속으로 소리 없이 외쳤다.
'이모, 제발 나 때문에 신경 쓰지 마. 내 걱정 좀 그만해.'
그 고마운 걱정어린 시선으로부터, 이 애틋하고도 무거운 마음으로부터 차라리 잠시 헤어지고 싶었다. 내가 비틀거리지 않고 꼿꼿하게 내 자리를 잡고 설 때까지만, 이모가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나를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내가 먼저 이모 손을 꼭 잡고 호강시켜 줄 테니, 부디 그때까지만 아프지 말고 버텨달라고.
멀어지는 차의 붉은 미등을 바라보며,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서 눈물 섞인 독백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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