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지독하게 질긴 인연의 끈이었을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몇 가지 지우지 못한 기억의 파편들을 이정표 삼아 마침내 다시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우리는 푸른 추억이 시작되었던 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준우는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짐짓 덤덤하게 물었다.

“유부녀가 어떻게 이 평일 저녁 시간에 나올 수 있었어?”

“남편이 출장 갔어. 그래서 잠깐 시간이 났어.”

거짓말이었다. 찰나의 침묵이 흐르고 준우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나…… 제대하고 나서 네가 다니던 회사로 제일 먼저 전화했었어.”

“그래? 몰랐네…….”

“전화받은 교환실 직원이 그러더라. 그 언니 결혼한다고 지난 9월 1일에 퇴사했다고.”

준우의 그 말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랬다. 나는 그해 9월 1일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준우는 아마 그 보름 뒤인 9월 15일쯤 제대를 했을 것이다. 나는 준우가 제대하기 전에 서둘러 시집을 가버리고 싶었다. 제대한 그 아이의 얼굴을 도저히 똑바로 쳐다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른을 코앞에 둔 스물일곱의 직장인 여자가, 이제 막 군대 문을 나서서 복학을 앞둔 스물다섯의 파릇파릇한 대학생 남자를 마냥 붙잡고 기다리지 않는 것. 내 초라한 현실을 숨긴 채 그 아이의 창창한 앞날을 가로막지 않고 비켜서 주는 것. 그것이 그 시절 내가 준우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예의이자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했었다. 그 배려가 준우에게는 평생의 원망이자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나는 짐짓 화제를 돌리려 오래전 기억 하나를 꺼내놓았다.

“언젠가 너 명동에서 본 것 같아. 어떤 키가 약간 큰 여자랑 데이트하는 것 같더라. 같이 밥 먹으러 걸어가던 뒷모습…… 딱 봐도 너였어.”

내 말에 준우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툭 한마디를 뱉었다.

“응. 나 결혼했어.”

“……그랬구나. 난 이혼했어.”

그 짧은 고백이 끝나는 순간, 준우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그리고 내 평생 가슴에 대못처럼 박히게 될 한마디가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오늘 여기 오면서…… 너 혹시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단단하게 빗장 걸어 잠그고 있던 무언가가 처참하게 부서져 내렸다. 헤어져 있던 그 오랜 세월 동안에도 준우는 끊임없이 나의 소식을 궁금해했고, 내가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내 삶의 궤적을 염려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밀려오는 미안함과 서글픔, 그리고 붙잡지 못했던 청춘에 대한 후회가 둑이 터진 것처럼 밀려왔다. 나는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카페 한복판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그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어버렸다. 어른이라는 가면을 쓴 채 덤덤한 척 살아왔던 내 삶의 서러움이 준우의 그 따뜻하고도 가슴 아픈 이해 앞에서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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