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와 최대한 냉정하게 써 내려갔던 그 편지에 어떤 말을 채웠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간절했던 마음이 전달되었던 것일까, 얼마 후 또 다른 낯선 남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준우의 군대 선임이라고 했다. 그는 내게 괜찮다면 서울 인근의 도시로 한 번 와줄 수 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러마고 답했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남자는 준우보다 계급이 높아 보였고, 본인은 조금 있으면 전역을 앞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준우가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동생 같은 전우의 연애가 안타까워 끈끈한 전우애로 날 만나보려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준우의 소식을 들고나온 그 선임 앞에서, 나는 오히려 모질고 매몰차게 못을 박았다. “우린…… 더 이상 그럴 만한 사이가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다른사람 때문에 준우를 잊지는 않을 거에요”
상대의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면서도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준우에게 들으라는 듯,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 이 모호한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
군대 간 남자를 기다릴 기약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더 이상 이 애매한 감정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고, 막연한 기대를 걸기는 더욱 싫었다. 무엇보다 서른을 앞둔 스물일곱의 여자가, 이제 고작 스물다섯이 된 남자의 제대를 마냥 기다리고 있기엔 현실의 시계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흔하디흔한 삼류소설의 대사처럼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으면 군화를 바꿔 신는다는데, 그런 유치한 감정 싸움에 휘둘리기도 싫었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내세운 그럴싸한 핑계일 뿐이었다. 내가 준우를 밀어낸 진짜 이유는, 내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무겁고 초라한 현실 때문이었다.
준우는 좋은 부모님 밑에서 구김살 없이 자란 너무나 평범하고 바른 아이였다. 반면, 당시 내 거친 삶의 환경은 준우의 평범함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팔랐다. 나는 도저히 그 아이를 내 집안에 데려갈 용기가 없었다. 산동네 판자촌에 살고 있는, 내 삶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가난한 친척들에게 준우를 인사시킬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내 가장 아프고 부끄러운 바닥을 준우에게 보여주느니, 차라리 냉정하고 이기적인 여자가 되어 그 아이의 기억에서 떨어져 나가는 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하나둘씩 시집을 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에서도 “너는 시집 안 가니?”라는 말이 안부 인사처럼 들려오는 나이가 되었다. 등 떠밀리듯 세상의 기준에 맞춰 가야 하는 나이, 그 무거운 압박감 속에서 준우라는 존재는 내가 감히 품을 수 없는 과분한 보석 같았다.
준우의 선임과 헤어져 돌아설 때, 나는 멀어지는 그의 등 뒤로, 혹은 저 멀리 연병장에 있을 준우를 향해 나직하게 읊조렸다. 마치 스스로에게 거는 평생의 주문처럼, 슬픈 독백처럼. “다른 사람 때문에 준우를 잊지는 않을 거예요.”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내 가난한 현실에 준우의 푸른 청춘을 묶어둘 수 없어서 돌아서야 했던 스물일곱의 가을. 나는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첫사랑의 문을 내 손으로 무겁게 닫아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