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씩 뒷걸질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느리게, 하지만 아주 확실하게.
5월이 되자 뭔가 이상했다. 대학의 꽃이라는 축제 기간이 분명한데도 준우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토요일이었던 축제 당일, 나는 평소에는 잘 입지도 않던 치마까지 정성스레 챙겨 입고 출근을 했다. 은근한 기대를 품은 채 퇴근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시계만 쳐다보았지만, 끝내 수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 말고 다른 파트너가 있을 리가 없는데…… 아닌가? 내가 모르는 다른 여자가 생겼나?’
속에서 서운함과 불길함이 번갈아 치밀어 올랐지만, 이내 스무 살 특유의 오기가 발동했다. 싫으면 관두라지, 내가 구걸하듯 매달릴 줄 알고. 나는 축제를 가고 싶어 목을 맸던 내색을 완벽히 감춘 채, 아무 말 없이 그 외로웠던 5월의 축제 기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폭풍 같은 침묵의 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마주한 준우는 내게 뜻밖의 고백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나 재수 안 했어. 현역으로 대학 간 거야.”
순간 멍해졌다. 나이를 한 살 늘려 나를 만났던 거다. 그러니까 준우는 나보다 어린 ‘연하남’이었다. 축제에 너무나 가고 싶었지만, 자기 학교로 나를 데려갔다간 동기들과 선배들 사이에서 나이를 속인 거짓말이 탄로 날까 봐 무서워서 말 한마디 못 하고 혼자 앓았던 것이다. 결국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의논했더니, 솔직하게 고백하고 예쁘게 사귀라고 등을 떠미셨단다.
그의 귀여운 비밀을 들었지만, 내 마음은 마냥 가벼워지지 않았다. 나이 한 살 차이보다 내 가슴을 더 무겁게 짓누른 건, 그 고백 너머로 선명하게 드러난 두 사람 사이의 거대한 벽이었다.
준우는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자란 넉넉한 중상층 집안의 아이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아르바이트 하나 하지 않아도 등록금이며 용돈 걱정이 전혀 없는 안늑한 세상에 살고 있었다. 매달 아버지의 월급날이 되면 준우의 지갑도 두둑해졌고, 그랬기에 우리 만남에서 늘 아쉬움 없이 술을 사고 밥을 사는 쪽은 준우였다.
반면 나는 당장 하루하루가 치열한 가난한 생활인이었다. 적은 월급을 쪼개어 내 생활을 꾸려가야 했고, 심지어 언니와 오빠의 대학 학비와 용돈까지 내 등 위에 짊어지고 있었다.
준우와의 미래, 혹은 결혼? 그건 스무 살의 내가 넘기에는 산 너머 산이었다. 그는 아직 군대도 다녀와야 하는 철부지 학생이었고, 나는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는 가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우리 헤어져” 하고 차갑게 돌아설 수도 없었다. 차마 녀석과 헤어지기는 싫었다.
결국 나는 머지않은 날에 찾아올 이별을 직감하면서도, 위태로운 만남을 고집스레 이어 나갔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인생은 결혼 아니면 헤어짐, 둘 중 하나로 결판나게 되어 있으니까.’
녹색 당구대 위에서 하늘로 솟구쳤던 하얀 공처럼, 우리의 관계 역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른 채 그저 위태롭게 공중을 떠돌고 있었다. 머리로는 끝을 생각하면서도 가슴으로는 그의 손을 놓지 못했던, 참 서글프고도 찬란했던 5월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