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선착순이네 어쩌네 하며 속으로 툴툴거렸지만, 입대하는 준우를 배웅하기 위해 나는 기어이 청량리역 플랫폼으로 향했다. 역전은 군대로 떠나는 청춘들과 그들을 붙잡고 우는 가족, 연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매연과 눈물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배웅은 청량리역 플랫폼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준우, 그리고 경철이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과 함께 청량리발 입대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덜컹거리며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낯선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고, 기차 안의 공기는 입대를 앞둔 이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남겨진 이들의 슬픔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강원도 어디쯤이었을까, 혹은 경기도 어디쯤이었을까. 지리도 길도 잘 모르던 나는 그저 준우의 궤적을 묵묵히 따라갈 뿐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사방이 군인들과 웅성거리는 가족들로 가득한, 이름도 위치도 모르는 낯선 군부대 앞이었다.
부대 연병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마침내 준우와 온전히 마주 섰다. 밤새 술을 진탕 마시고 까슬까슬하게 짧은 머리를 한 준우의 모습은 낯설다 못해 가슴 한구석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남들처럼 목을 안고 엉엉 울 용기도 없었던 나는, 그저 수줍게 손을 내밀어 준우와 악수를 했다.
“잘…… 다녀와.”
“응.”
준우는 내 손을 잡은 채 짧게 대답하더니, 순간 힘을 주어 내 팔을 제 쪽으로 살짝 당겼다. 아주 잠깐, 그의 단단한 품이 가까워졌다가 이내 스르륵 놓아졌다. 그 짧은 당김 속에 님이 가지 말라고 붙잡아주길 바랐던 준우의 모든 서러움과 미련이 다 녹아있었을까.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 제대로 된 이별의 말도 없이 서로를 놓아주었다. 짧은 머리의 준우가 연병장 저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내 가장 찬란했던 스무 살의 한 페이지도 함께 저물어갔다.
준우를 부대 안에 남겨두고 돌아서는 길,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는 이제 경철이와 나 둘뿐이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던 경철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왔어요?
사실…… 안 올 줄 알았어요.”
경철이의 눈에 비친 준우와 나는 이미 마음이 뜬 지 오래된, 식어버린 연인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를 좋아한다던 경철이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멍해진 눈으로 나직하게 답했다. “오고 싶었어요. 마지막 가는 길, 배웅하고 싶었구요.”
경철이는 차마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경철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일이었다. 준우와 나 사이에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오직 우리 둘만이 공유하는 끈끈하고 서글픈 시간의 궤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어도 청량리에서부터 이름 모를 군부대 앞까지 그 먼 길을 동행하게 만들고, 이혼 후 머나먼 타지의 콘도 공중전화 부스에서 수화기를 들게 만들, 경철이는 절대로 끼어들 수 없는 ‘우리들만의 시간’이 그곳에 흐르고 있었다.